검술, 무술에 대한 고찰 잡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것이지만 보통 사람들이 모르는 무술이란 서브컬처에서는 무술에 대한 논의와 시도가 깊고 오래전부터 이루어져 왔다.  반세기 전만 해도 백병전은 현대와는 전혀다르게 중요한 것이었고 이는 목숨에 직결되는 것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자신은 안전히 지키면서 적을 치는 것이 주된 골자였다.  특히 근대검술은 나를 방어하는데 특히 더 많은 신경을 썻다. 일부러 거리를 두는 보법 등이 그 예이다. 굳이 근대가 아니더라도 방어는 계속 논의된 바 있다. 심지어 스몰소드조차 방어를 위한 여러 꼼수가 그림으로 남은 바가 있다.

저 사진의 망토로 현혹도 매우 약한 편으로, 온갖 참신하고 비열한 술법은 산처럼 쌓여있다.

그럼에도 방어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오로지 먼저 치는 것만을 자랑으로 하는 저열한 자칭 수련자가 있다는 것은 매우 애석한 일이다. 자존심이 강한 건지 매체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싸움은 살아남기를 위해 하는 것이며 부상은 전혀 명예가 아니며 싸움의 의미를 스스로 내다 버리는 것이다. 살아남지 못하는 것과 부상을 전제로 한 공격은 전혀 싸움도 아니며 무술도 아니며 그저 자살돌격에 지나지 않는다. 다 죽어가며 승리라고 하는 말을 누가 믿겠는가? 다치지도 죽지도 않는 것이 승리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단검사용만을 전제로 한 나이프 파이팅은 회의적이지 않을 수 없다. 유술기에 수반되는 나이프 파이팅이라면 여전히 위험함이 있지만 그저 나이프 한자루만을 들고 전투/결투에 임하는 것은 위험과 불확실성의 결정인 것이다.  짧으니 빠르고, 무기의 뻗는 거리는 한정된다.  방어를 논하다 나온 사족이지만, 부상과 살아남지 못하는 승리와 관련해서 나쁘지 않은 예시라고 생각된다.

그렇게 방어도 하지 못한 채 달려드는 자칭 수련자는 방어를 아는 자에게 있어 성벽에 달려드는 꼴 이하도이상도 아닌 셈이다.  방어가 즉 공격이라고 하기야 하지만 그것은 충분한 수련과 깨달음이 있어야 가능하며 이 또한 숙련자에게 간파당할 시 처참히 당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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